클로버필드
2008/01/31 17:15가끔 창 너머로 우르르쾅쾅대는 천둥소리를 포탄소리로 착각할 때가 있다. 천둥이 치기 몇초 전에 내리쬐는 뇌우에 하늘이 순간 반짝이는 순간 내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한다. 곧 심장박동은 천둥소리와 함께 최고조에 달하고 이내 곧 안심한다. 북한이 쳐들어온건가? 미군이 선제공격한건가?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면서도 전쟁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있다. 그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닌 내 일상이 산산히 쪼개지는 것에 대한 공포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여자친구 그리고 내 생활. 그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은 상상만해도 오금이 저린다. 어릴 적 즐겨봤던 일본 재난만화의 잔영이 떠오르면서 <나는 전설이다>의 로버트 네빌처럼 혼자 절대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남긴 하는구만) 겨우 천둥번개 하나에.
봉준호의 <괴물>이 괴수물이되 공포물이지 못한 까닭은 인위적인 연출때문이다. 우리는 <괴물>을 관람한다고 여기지 목격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예술적인 의미를 모두 차치하고 본다면 <괴물>은 그저 두시간짜리 여흥에 지나지 않는 관람물인 것이다. 인칭을 넘나드는 연출은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켜주지만 현실적인 느낌은 반감시킨다. <괴물>의 재난은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적인 느낌, 즉 개연성이 대체로 떨어진다. 거기에 시종일관 <괴물>을 지배하는 유머 또한 극의 비현실성에 한몫한다. 그러나 <클로버필드>는 고전적인 연출의 묘를 거의 배제한 채 현실적인 느낌에 집중한다. <클로버필드>는 관람한다기 보다는 목격한다는 표현이 더 걸맞는다. 이걸 대체 영화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컷은 얌체공마냥 튀며 연신 흔들어대는 카메라는 금방이라도 위액이 역류할 듯 어지럽게 움직인다. 게다가 피사체를 안정적으로 보이게하는 여백의 공간, 즉 룸까지 없다. 이야기하느라 목이 잘리고, 한쪽 눈만 나오고, 카메라 녹화버튼 누르는 것을 깜빡해 걷는 발을 연신 찍어댄다. 이런 건 요즘 초보자도 안하는 실수들이다. 이른 바 익스트림 핸드헬드. <클로버필드>는 극적인 연출이 배제된 것처럼 연출한다. 엔딩크레딧에 떡하니 자리잡은 매튜리브스 감독의 이름이 사치스럽다고 여겨지기까지하는 수준이니. 그러나 무엇보다 <클로버필드>를 더욱 더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캠코더의 1인칭 시점 덕분이다. 카메라의 화면은 나의 시선으로 합치되며 미칠 정도로 어지럽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시선을 거두는 순간 바로 죽음의 공포와 맞닿는 것 마냥 말이다. 외면할 수 없다. 언제 한번은 사건에 다른 시점으로 안정된 움직임의 인서트샷 나오겠지하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그 때의 현실에 있지 않은 것은 센트럴파크에서 발견됐다는, 복제하지 말라는 자막 뿐이다. 찍힌 순간부터 끝까지, 그것만이 영화 <클로버필드>의 전부다. 그렇다고 지루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클로버필드>가 만들어내는 스펙타클은 여느 액션영화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히 스펙타클이라고 말하기엔 꺼려진다. <클로버필드>가 자아내는 공포는 스너프필름이나 과격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자행한 참수동영상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촉감이 베어있다.
사실 <클로버필드>의 설정은 대단히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런 괴상망측한 괴수가 맨해튼의 중심을 휘젓고 다닌다? 현실과 꿈을 분간못하는 꼬마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누구나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공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괴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괴수가 불러온 결과들이 무섭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을 날 것의 상태, 내 망막과 사건현장이 같은 공기로 맞닿아있다는 느낌으로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나가고 나는 과연 살아날수나 있을까하는 체념으로 가득하다. 살아나면 뭐하나, 자신의 삶은 이미 재로 변해버렸는데. 전쟁의 가능성이 1%로라도 남아있는 현재 상황에서 <클로버필드>는 공포를 현실로 전이시킨다. 9/11을 코앞에서 경험한 뉴욕시민들은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난 이 빌어먹을 영화 덕분에 올해 장마철에도 역시 벌벌 떨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S - 그럼에도 난 J.J. 에이브람스의 떡밥에 언제나 걸리길 희망한다. <엘리어스>는 보지 못했지만 <LOST>는 내가 태어나서 본 역대 최고의 영상물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버필드>가 처음 시작할 때 뜨는 경고문구 우측하단에 <로스트>에 등장하는 "달마 이니셔티브"의 로고가 박혀있었다고 한다. 설마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로버필드>는 <로스트>의 스핀오프 시리즈 내지는 결코 평행하지 않은, 언젠가는 꼭 만날 교집합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 혁명적이지 않은가? 드라마와 영화의 조합. 맥거핀효과를 두고 에이브람스를 제2의, 제3의 히치콕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히치콕은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영상문법을 가지고 놀았지, 에이브람스는 모든 영상매체를 갖고 논다. <미션 임파서블 3>의 예를 보면 그는 연출자보다는 제작자로서의 자질이 더 뛰어난 것 같다.
봉준호의 <괴물>이 괴수물이되 공포물이지 못한 까닭은 인위적인 연출때문이다. 우리는 <괴물>을 관람한다고 여기지 목격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예술적인 의미를 모두 차치하고 본다면 <괴물>은 그저 두시간짜리 여흥에 지나지 않는 관람물인 것이다. 인칭을 넘나드는 연출은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켜주지만 현실적인 느낌은 반감시킨다. <괴물>의 재난은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적인 느낌, 즉 개연성이 대체로 떨어진다. 거기에 시종일관 <괴물>을 지배하는 유머 또한 극의 비현실성에 한몫한다. 그러나 <클로버필드>는 고전적인 연출의 묘를 거의 배제한 채 현실적인 느낌에 집중한다. <클로버필드>는 관람한다기 보다는 목격한다는 표현이 더 걸맞는다. 이걸 대체 영화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컷은 얌체공마냥 튀며 연신 흔들어대는 카메라는 금방이라도 위액이 역류할 듯 어지럽게 움직인다. 게다가 피사체를 안정적으로 보이게하는 여백의 공간, 즉 룸까지 없다. 이야기하느라 목이 잘리고, 한쪽 눈만 나오고, 카메라 녹화버튼 누르는 것을 깜빡해 걷는 발을 연신 찍어댄다. 이런 건 요즘 초보자도 안하는 실수들이다. 이른 바 익스트림 핸드헬드. <클로버필드>는 극적인 연출이 배제된 것처럼 연출한다. 엔딩크레딧에 떡하니 자리잡은 매튜리브스 감독의 이름이 사치스럽다고 여겨지기까지하는 수준이니. 그러나 무엇보다 <클로버필드>를 더욱 더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캠코더의 1인칭 시점 덕분이다. 카메라의 화면은 나의 시선으로 합치되며 미칠 정도로 어지럽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시선을 거두는 순간 바로 죽음의 공포와 맞닿는 것 마냥 말이다. 외면할 수 없다. 언제 한번은 사건에 다른 시점으로 안정된 움직임의 인서트샷 나오겠지하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그 때의 현실에 있지 않은 것은 센트럴파크에서 발견됐다는, 복제하지 말라는 자막 뿐이다. 찍힌 순간부터 끝까지, 그것만이 영화 <클로버필드>의 전부다. 그렇다고 지루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클로버필드>가 만들어내는 스펙타클은 여느 액션영화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히 스펙타클이라고 말하기엔 꺼려진다. <클로버필드>가 자아내는 공포는 스너프필름이나 과격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자행한 참수동영상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촉감이 베어있다.
사실 <클로버필드>의 설정은 대단히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런 괴상망측한 괴수가 맨해튼의 중심을 휘젓고 다닌다? 현실과 꿈을 분간못하는 꼬마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누구나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공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괴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괴수가 불러온 결과들이 무섭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을 날 것의 상태, 내 망막과 사건현장이 같은 공기로 맞닿아있다는 느낌으로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나가고 나는 과연 살아날수나 있을까하는 체념으로 가득하다. 살아나면 뭐하나, 자신의 삶은 이미 재로 변해버렸는데. 전쟁의 가능성이 1%로라도 남아있는 현재 상황에서 <클로버필드>는 공포를 현실로 전이시킨다. 9/11을 코앞에서 경험한 뉴욕시민들은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난 이 빌어먹을 영화 덕분에 올해 장마철에도 역시 벌벌 떨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S - 그럼에도 난 J.J. 에이브람스의 떡밥에 언제나 걸리길 희망한다. <엘리어스>는 보지 못했지만 <LOST>는 내가 태어나서 본 역대 최고의 영상물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버필드>가 처음 시작할 때 뜨는 경고문구 우측하단에 <로스트>에 등장하는 "달마 이니셔티브"의 로고가 박혀있었다고 한다. 설마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로버필드>는 <로스트>의 스핀오프 시리즈 내지는 결코 평행하지 않은, 언젠가는 꼭 만날 교집합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 혁명적이지 않은가? 드라마와 영화의 조합. 맥거핀효과를 두고 에이브람스를 제2의, 제3의 히치콕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히치콕은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영상문법을 가지고 놀았지, 에이브람스는 모든 영상매체를 갖고 논다. <미션 임파서블 3>의 예를 보면 그는 연출자보다는 제작자로서의 자질이 더 뛰어난 것 같다.